+유자+의 설탕/CJ Entus
아픈 손가락, 현준이
+유자+
2009. 5. 28. 09:03
흔히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한다.
열 손가락 다 내 손가락이니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아프지 않은 것이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안 아픈 손가락'은 없어도 모두 똑같이 아픈 것은 아니어서, '조금 더 아픈 손가락'이 더러 있다.
내가 처음 우리팀을 접했을 무렵에 '애기 선수'로 불렸던 선수들은 나에게 '더 아픈 손가락'이다.
쑥쑥 자라야 될 무렵에 팀 창단으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타이밍을 놓쳐 언제나 위태위태해 보였지만,
늘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자기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 아이들이 제대로 못 커서 팀이 부진했다는 둥의 막말이 난무할 때도,
스스로 크고 싶지 않아서 무럭무럭 자라지 못했을 것이 아니기에 마음만 아팠지 원망스럽지 않았다.
너무나 가능성 있고, 경기에 특색도 있고,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어여쁜 아가들이었다.
이제는 팀에서 고참급이 되고 중견이라고 불려도 나에게는 언제나 그 때의 '애기 선수'로 사랑스럽다.
우리 육이랑 현준이, 수현이, 상봉이, 내 아픈 손가락들.
특히 육이랑 현준이는 나를 이 에너제틱한 세계, 이 멋진 팀으로 끌어당겨준 장본인이기에 너무나 소중하다.
그래서 육이가 은퇴할 당시 나는 정말 패닉에 빠질 수 밖에 없었고, 두고두고 가슴저리면서
팀이 잘 되면 잘 되는대로, 못 되면 못 되는대로 때마다 육이를 아프게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삭발할 때부터 무슨 일이길래 애가 고민이 많나, 빨리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했었던 현준이가,
이번에는 현준이가 로스터에서 빠지고, 이상한 메세지들이 보이고, 아픈 소문이 들린다.
멀리서 지켜보는 팬 입장에서 이야기가 들리면 이미 뒷북일 수 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정말, 아니었으면 좋겠다.
잠깐 쉬고, 마음 정리하고, 한 번만 더 결심해 주고, 그리고 돌아와 주었으면.
현준이는 빠르고 정신없는 플레이로 전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려 결과적으로는 '재미있는' 경기를 양산한다.
게이머로서의 커리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장점이었을지언정, 팀플에 대한 감각도 갖춘 센스있는 플레이어였다.
오랫동안 건재한 지훈이-형태와 기세가 좋았던 성기, 확 치고 올라오는 병세 사이에서 기회가 적었지만,
최근에 나온 프로리그 경기들에선 괜찮은 경기력으로 쉽지 않은 상대들을 이겨주고,
김구현과의 곰클래식 경기에서도 수 차례의 날빌에 당하면서도 최대한의 수비를 보여주었기에
아, 아직 가능성은 충분하다, 조금만 더 하면 이기는 경기를 하겠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한꺼번에 뛰는 경기 방식이 아니더라도 팀워크가 중요한 '팀 단위 리그'이기에 분위기를 잘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현준이는 누구에게나 장난치고, 누구의 장난이든 다 받아주는 '샌드백' 역할도 해 주는
어떤 단체에서든 화기애애하고 스스럼없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눈에 띄지 않지만 함께 연습하고 자기 역할을 다 하면서 시너지를 낸
그런 모든 선수들이 위너스리그 우승이나 지금의 이 성적에 기여한 바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준이도 오케스트라의 팀파니 연주자처럼, 사물놀이의 징치배처럼,
조화로운 팀의 완성을 위해 꼭 있어야만 하는 구성원이면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공로자였다.
물론 그것으로 어린 선수의 자존감을 고취시키기엔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런 현준이가 만약 육이처럼 은퇴를 선언한다면,
나는 그것이 현준이에게 보다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지라도 인정하지 못한 채
가슴 에어지는 시간을 겪고 손가락이 떨어져나가는 아픔을 겪을 수 밖에 없을 테다.
좋은 일로 3라운드를 마무리하고,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4라운드를 마무리한 이 시점에 이게 왠 날벼락인지.
이사하고 아이들 몸이 힘든 시점에 팀을 개편한다는 얘기들이 함께 돌았지만,
이렇게 소중한 선수들이 이런저런 이유들로 우수수 다 떨어져나갈 줄은 미처 몰랐다.
제발 코치진과 프론트가 어린 선수들을 상대로 현명한 판단, 따뜻한 처신을 하길 바란다.
내가 사랑하는 선수들이 함께 오손도손 즐겁고 활기차게 이기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는데.
이 글이 별것 아닌 일로 나 혼자 한 헛짓이기를, 지금도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