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글을 쓰지 않으면 이 감정이 다 잊혀질 것 같다.
이미 많은 세트가 끝나있겠지만, 그래도, 설령 이것이 마지막 경기가 되더라도 지켜봐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그 모든 시간을 이겨내온 이 아이들에 대한 나의 의리이고 도리이니까.
"내가 지켜봐주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후회하지 않는다.
5세트를 10연패중이던 선수에게 내주는 것을 보면서도 화는 나지 않았다.
다만, 결국은 저런 것들에게 져서 좌절되는구나 하는 것이 사무치게 안타까웠을 뿐이었다.
그래도 찰떡같이 동그란 곰 얼굴에 평소와 달리 결연한 의지가 서린 것을 보면서
6세트를 보는 내내 기대로 벅찼고, 가슴이 조여드는 긴장감에 즐거웠다.
영화가, 지고 또 지던 영화가 결국은 자기가 지면 팀이 지는 경기에 나가서
팀을 살려주는 것을 보면서 결국은 조금 울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영화와, 그런 영화를 맞이하는 아이들과 코치님들과 감독님을 보면서
어떤 CJ 팬이 눈물흘리면서도 웃지 않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윤철이가 경기석으로 들어가기 전, 너무나 즐거워하면서 손뼉을 마주치는 아이들이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좋아서, 마치 이미 이긴 것처럼 웃음이 비어져 나왔더랬다.
그렇게 시즌 마지막 순간까지 기대감을 심어주어서, 흥분과 쓰릴을 선물해주어서,
밋밋한 삶에 긴장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서, 설레발을 칠 수 있게 해 주어서,
무엇보다 가슴을 치는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서 정말 고맙다.
우리팀이 지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우리팀은 오늘 졌고, 시즌은 끝났다.
에이스 결정전 엔트리는 어쨌든 말렸으며, 윤철이는 실력에서 지고 경기를 내주었다.
그 망할 실력이란 것이 오직 이런 타이밍에만 발휘되는 운도 지랄맞게 좋은 놈에게...라는 것은 논외로 하고.
그렇지만, 우리팀에는 외부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 그런 것에 흔들리기보다는
늘 우리 아이들이 오늘은 이래서 이겼고, 저래서 잘했다면서 내부에 포커스를 맞추는 감독님이 있었다.
T1에는 마이크가 주어지자마자 벌써부터 언감생심 머나먼 곳에 있는 KT나 까내리려고 하고,
늘 상대팀에게 칼날을 들이대려고 하는 감독이 있어서, 오늘 승리팀 감독으로 이름이 나가더라.
우리팀에는 영화가 연패하고 이상하게 몰려드는 '까'들에게 욕을 먹고 있을 때,
지고 나온 것을 안아주고 잡아주었으며, 이기니까 진심으로 좋아하는 얼굴을 한 팀원들이 있었다.
T1에는 영화에게 지고 아예 사라져버렸다가, 에결인 다음 경기를 보지도 않고 죽을상인 박재혁이 있고,
그런 박재혁이 지고 나서 씁쓸한 얼굴들로 멀뚱하게 서있는 팀원들이 있더라.
우리팀에는 에결 나가는 어린 선수가 관중에게 인사하고 경기석으로 들어가기 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는 얼굴로 응원의 목소리를 내는 팀원들의 하이파이브와 감독님의 사인이 있었다.
T1의 에이스는 멀뚱하게 무표정으로 바라보는 팀원들 앞에서
감독의 1인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타임머신 안으로 안내되더라.
우리팀에는 내일과 모레 연속해서 7전제를 치러야 하더라도 조지명식에 나갔을 선수들이 있었고,
T1에는 그러지 못할 선수들이 자기 팀의 꼼수에 대해 미묘하게 열등감을 느끼며 지껄인 헛소리들 뿐이었다.
그래서,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물론 진 것은 너무나 마음이 아프지만.
이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분명 이길 수 있었는데, 회한은 남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오늘 이긴 팀은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내가 이 판을 처음 알게 되어서 내 팀을 고를 수 있던 때로 100번을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또 CJ를 고르고, 또 CJ를 고르고, 또 CJ를 선택할 것이다.
...
모 스포츠웨어 광고에서 말했었다.
팬들은 "져도 멋진 경기였다"고 말한다.
그것이, 진심인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모두들 그걸로 만족한다.
그것이, 진심인가.
The winner takes it all.
나는 오늘도 대답한다. 그것은 진심이었다고.
세상에는 "졌지만, 이긴 팀 부럽지 않은 멋진 경기"도 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적어도 팬들은 그것에 만족할 수 있다.
결코 "winner"만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진심임을, 내 선수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정말로 그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서 만족스럽고 행복했음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들이 일어나서 그렇게 타격을 입고도 여기까지 온 것이 바로 승리임을,
서로 도닥이고 챙기면서 즐겁게 이기려고 하는 모습 자체가 아름다웠음을,
내 선수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이번 시즌, 팬도 선수도 감독도 힘들어서 중간중간 흔들렸던 시즌이었지만,
그래도 또다시, 이런 감동과 가슴저림을 선물받게 되어서 고맙습니다.
정말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CJ ENTUS, 파이팅!
p.s. 정우는 꼭 내일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조지명식 잘 다녀오렴.
네가 그렇게 힘들게, 팀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도움을 받아서 따낸 떳떳한 1번시드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