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원 해설이 미니홈피에 몇 문장을 남겼다고 했다.

"우린 진심이었으므로 진 게 아닙니다"
"그 잘못된 일 때문에 기죽지 않습니다"

...


그래, 이 사건에 대한 가장 침착하고 분별있고 올바른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상처받은 것은 내 믿음이고, 믿어오면서 들였던 내 시간이었다.
그 소중한 경험과 가슴벅찼던 감동들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이 사건을 접하고 나서,
배신감과 노여움이 한바탕 휩쓸고 난 뒤에 내리는 결론은 저런 것이었다.

그 소중한 감정에 대한 배신은 그 누구를 탓하고 책임소재를 따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그것을 다스리는 게 가장 먼저였다.
나는 지지 않았다고, 그 시간에 그들을 향한 내 마음만은 진심이었음을.
그것을 추스리고 나서야 분석하고 진실을 알고자 하고 수습방안을 궁리하는 단계가 따를 수 있는 것이었다.


...


최근들어 "진짜 뒷담화"를 카메라 앞에서 돈 받으면서 하는 행태를 보였던 그네들에게 질려서 잘 보지도 않았었다.
박용욱에, 특히 강민까지 합세해서 내 머릿속에서는 도저히 떠올릴래야 떠올릴 수조차 없던
저속하고 천박한 단어들을 쏟아내는 그 언변에 이르러서야, 귀 열고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실도, 새로운 정보도 아니고, 거짓과 막말로 내 선수들 뒷담화 하는 데는 정말 진저리가 났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승원 해설처럼 이성적이고 통찰력있는 반응을 보이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태형 해설처럼 자기가 카메라 앞에 있는지, 자기 나이가 몇 살인지, 자기가 어떤 입장에 있는지는
아예 관심조차 없는 문제인 양 행동하는 사람이 e-스포츠계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발언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은
e-스포츠의 미래를 더욱 암담하게 만드는 일임에 틀림 없다.
그자가 "방송 카메라" 앞에서 예의 그 선수들을 칭했듯 "그새끼"라고 쓰고 싶지만 참는 것이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욕설을 하고, 그것을 여과없이 내보냈으니 그렇게 칭해져도 할 말은 없겠지만.
묵음 처리, 자막에 XX 처리를 하면 뭐하나? 보는 사람들은 다 들은 것이나 진배없는데.
정말이지 김태형, 박용욱 정신연령이 알만하다.

지금 이 상황에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에 관해서라면 확실한 부분이 분명 있다.
아주 자명한 것은, 가장 큰 피해자이자 유일하게 순수한 피해자는 팬들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주 극명하게 배신당했으며, 이전의 그 어떤 행동으로도 이 사건의 원인을 보태지 않았다.
물론 내가 이 판의 착취 구조를 알면서도 안쓰러워만 하고 그저 관조해서 미안하지만.

하지만 저들은 다르다.
그들은 어떤 것이었든 e-스포츠 판에서 한 역할을 담당하던 사람이었고, 결국 문제 집단의 구성원 중 일부이다.
그런 그들이 "피해자이기만 한 척" 하는 것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온다.
이 사태를 직면하고 진심으로 기보다는 어떤 구멍으로든 빠져나가고, 책임전가 하고싶어만 하더군.
니들이 뭔데 이 판을 이렇게 만드냐고? 너희 밥줄을 끊어먹느냐고?
그게 정말 이 판에 대한 애정과 그에 대한 배신감에서 하는 소리인가?
아니면 그냥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감정이 생각을 이겨먹는 자의 망발인가?

답은 자명하다.

니들이 뭔데? 하는 말은 내가 하고싶다.
니들이 뭔데 이렇게 방송에서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그것이 마치 e-스포츠판 전체의 의견인 양 떠드는데?
니들이 뭔데 그렇게 감정적으로 막말 쏟아내서 안그래도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팬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데?
니들이 뭔데 모든 것을 선수들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피해자드립 하면서 쏙 빠져나가려고 드는데?
니들이 뭔데 마음대로 부끄러워하고, 마음대로 내가 감동받았던 과거까지 말소하려고 하는데?



김태형씨, 자기가 엄청나게 영향력있는 사람인 줄 착각해서 그것이 매우 마음에 드는 모양이던데,
내가 내일 스타리그 결승을 보러 가는 이유는 당신이 같지도 않게 머리 조아리며 헛소리 지껄여서가 아닙니다.
팬들의 감정이 그렇게 가볍고 우스워보인다니 10년도 넘게 이 판에서 일한 자의 알량한 직관이니 당연한 건지.

타겟을 잘못 정한 홧증밖에 안 남아 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조차 못하는 당신의 말 한마디에
지금껏 이어온 팬심이 움직일 정도였다면, 이 판이 여지껏 유지되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걸 아십시오.
일개 팬인 나도 파악하고 판단하고 있는 이 사건의 본질과 화의 방향을 어떻게 생각조차 못하고 있습니까.

당신같은 사람이 방송에서 사태파악 못하고 스타리그 결승에 와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결론을 내고 있으니,
그렇게 책임회피하려고 욕설이나 하는 사람이 이 판의 어른이자 발언권자이자 구성원이라니.
안그래도 어려운 현재 e-스포츠판의 미래가 도저히 밝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무엇이 본질적인 문제이고, 어떤 것이 현명한 처사인지 도저히 자기 머리로는 모르겠다면,
옆에서 듣지 않는 당신을 상대로 열심히 설명하던 엄재경 해설에게나 물어보시든지.


...


e-스포츠판의 대표적 인물 중 한 사람의 막말을 듣고,
대부분의 협회 및 관계자들도 저런 식으로 무식하고 비이성적으로 막되먹은 생각을 할 거라는 생각에
모두 싸잡아서 비난한 것 같아서 그 점은 일부 관계자들에게 죄송하긴 합니다.
이승원 해설이나 엄재경 해설처럼 이 사태를 꿰뚫고 진심으로 해결하려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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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를 좋아하고, 마재윤에게 감동을 받아서 이 팀의 매력을 알았고, 진영수를 존경한다고 말해왔던,
나이도 어리지 않고, 맹목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고, 똑똑한 팬 한 사람이 스타리그를 보러 가는 이유는,
김정우가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후폭풍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해온 것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해왔던 내 선수들은 결코 진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한 단계 강인해진 정우가 이기는 모습을 보고 싶고, 그 노력에 한 사람분의 목소리를 보태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렇게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설치는 상황에서도 e-스포츠판이 "망했다"는 단언을 하지 않는 이유는,
진심을 논하는 이승원 해설이나, 알 수 없이 뒤늦게 아량이 생긴 엄재경 해설같이
이 사태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이 판을 지키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순진하게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는 내 선수들이 너무 가엾고 대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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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쓰려고 했던 것은 사실 우리 수현이가 이긴 대 화승전에 대한 느낌,
그리고 이 모든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결승까지 가준 기특하고 안쓰러운 우리 정우에 대한 응원글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별로 틀어보지도 않았던 온게임넷을 잠깐 보다가 귀에 들어온
어처구니 없고 저속한 발언들에 기가 차서 기어이 이것에 대한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쓰게 되었다.
정말 '화'의 에너지는 이만큼 대단하구나. 나에게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를 글을 쓰게 하다니.
가장 상처받은 사람은 너희들이 아니라 우리들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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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우는 꼭 결승에서 이기렴.
이렇게 억울한 상황인데, 그것을 다 이겨냈는데 승리로 마지막을 장식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의 억울함이나, 그 누구를 위해서 이기라는 것은 절대로 아니야.
다만 너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왔고 충분히 재능있는 너를 위해서 이기기를 바란다.
김정우 파이팅.



Posted by +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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