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화 준우승한 날을 되짚어보면.
좋아하면 눈에 콩깍지가 씌인다고들 한다.
나는 영화가 좋아서 영화에게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이길 것 같은 콩깍지"가 씌여 있다.
영화가 데뷔전부터 이기면서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부풀려 놓았기 때문에 그 콩깍지는 무럭무럭 자랐고,
잘 할 때는 apm230 이것도 최근에 아주 많이 빨라져서;; 답지 않은 마이크로 컨트롤과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무적포스의 경기력을 보여주어서 더욱 커져버렸었다.
최근에는 운까지 따라주면서 이미 진 경기도 이기니 콩깍지는 벗겨질 줄을 몰랐다.
사실 팬들이 전부 쓰고 있는 이 "콩깍지"는 아주 맹목적이고 비과학적인 것만은 아니다.
팬들은 내 선수에 관심 없는 일반 사람들보다 양적, 질적으로 월등한 정보를 가지고 판단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처음 MSL 서바이버를 치를 때, 진영화 대 조일장의 시청자 승자예측은 25:75였다.
하지만 콩깍지가 씌였던 나는 진영화가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서바이버 첫출전 대 스타리그 4강이라는 기존의 데이터를 무시하는 예측을 했더랬다.
결과는, 일반 시청자가 모르는 영화의 저그전을 이미 알고 있던 "과학적인 콩깍지"의 승리였다.
그래서였다.
영화가 잘할 때 얼마나 무적포스로 잘할 수 있는지 남들이 모르는 구석구석까지 알고 있었기에,
테란전 최근전적 10전 5승 5패, 승률 50% 미만의 영화가 이길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처음 개인리그를 뚫은 '로열로더'에게 주는 부담도, 얼도당토 않은 기대도 아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온 팬으로서 근거 있는 믿음이었던 것이다.
비록 이번에는 상대의 경험과 기세 앞에 좌절을 맛보았지만,
나는, 그리고 팬들은 다음에도 콩깍지를 쓰고 끝까지 의심없이 믿을 테다.
그러면 그 때는, 영화의 말처럼, 꼭 이겨줄것만 같은 믿음이 벌써부터 또 샘솟는다.
이번 스타리그 결승은, 팬 입장에서 가장 "잘" 진 시나리오였다.
우선 0:3 완패를 할 수도 있었는데, 그 위기를 극복하고 자기 준비한대로 한 경기를 완벽하게 이겨내면서
결승에서 이기는 법을 체득하며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큰 소득이다.
3경기 끝나고 우르르 몰려들어온 다른 아이들이랑 웃고 떠들고 기지개켜는 모습이 어찌나 이쁘던지. +_+
그래서 사실 벙커링에 끝나버린 4경기가 더욱 아쉬웠는지도 모르겠다.
3경기 이후의 분위기가 5경기까지는 무조건 끌고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하지만 2:3으로 지면 그렇게 후회가 남고 아쉬움이 영원히 간다는데, 그러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판짜기를 배운 것도, 아니, 판짜기를 할 줄 아는 선수라는 것을 보여줄 기회를 잡은 것도 큰 수확이었다.
여러 가지 전략과 다양한 운영, 생더블까지를 적절히 배합한 판짜기!
실력이 아무리 월등한들 판짜기가 안되는 건 불치병이라 극복이 안 되는데, 영화는 이미 하는구나~
스타리그 결승을 보는 동안 영화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매 경기마다 눈에 보였다.
승률 50퍼센트도 안 되는 테란전이 약하다고 말이 많았는데,
오늘 스타리그에서의 패배는 그 '약한 테란전'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로열로더 후보로 아직 개인리그에서는 경험이 일천했던, 신인 티를 벗지 못한 영화가
지금 기세를 타고 있는 경험 많고 우승자출신인 몇 년 선배 선수에게 실력에서 밀렸을 뿐이다.
그것은 그 어떤 패배보다 극복할만하고, 재도전 해볼만한 희망적인 패배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 영화를 가장 사랑하게 된 이유는,
영화가 "미안하다"가 아닌 "고맙다"를 말했기 때문이다.
물론 팬들에게는 아니고 부모님께 한 말이었지만, 팬들에게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믿는다.
준우승한 선수들이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게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없었다.
지난 시즌의 상봉이처럼, 그 선수가 내 선수일 때면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
영화도 혹시나 그러면 어쩌나, 전혀! 절대로! 미안할 일이 없는데 미안해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미안하다"가 아니라 "고맙다"고 말할 줄 아는 영화가 너무나 예뻤다. ㅠ_ㅠ
고맙다.
결승날까지는 "우승하는 거 아냐?" 하는 기대에 누나팬을 설레게 하고,
결승전 인터뷰에서는 지지않는 말솜씨와 쓰레기같은 관중의 난동에도 재치있고 예쁜 태도로 웃음짓게 하고,
1경기 후에는 3:1로 이길 것 같아서, 3경기 후에는 역스윕의 희망을 품으면서
떨리게 해준 우리 영화에게 너무나 고맙다.
상봉이는 이적하고, 재윤이와 형태는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며 팬들의 가슴을 덜컥거리게 하고,
믿었던 아이들이 피씨방으로 우수수 떨어지고, 프로리그에서는 연패와 속상한 패들이 쌓여가는 동안,
영화가 팬들의 유일한 기쁨이 되어 스타리그를 기다리게 해주었고 마지막날까지 우승할 기대감에 부풀게 해주었다.
얼굴만 봐도 그저 웃음이 나는 축 처진 눈과 곰 같은 얼굴로
그런 희망과 설렘까지 선물해주어서 정말 정말 고맙다.
아이들의 작은 제스쳐에도 팔랑팔랑하는 팬은 또 기대감에 가득찼다. +_+
잠깐 소강상태이지만 다시 반성하고(!) 곧 에이스의 위용을 갖출 우리 정우,
처음으로 하루 2승을 하며 본인이 에이스감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증명한 우리 병세,
그리고 아가 트로이카가 성장하기 시작할 무렵 가장 처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국 가장 빨리 고지에 올라 큰 무대를 경험하고 성장한 우리 영화는,
결승전 후기들에 그렇게 화기애애했다던 팀 분위기와, 이미 형성된 3라운드에 대한 근자감과 더불어
위너스리그에서 또 한 번 모두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행보를 보여주게 될 것 같다.
안그래도 똘똘 뭉쳐 3라운드를 이끌었을 매콜곰 우리정우가 이걸 밀고 있으니 트로이카가 경험까지 쌓아서
에이스결정전 카드를 세 개나 가진 팀이 되었으니 팬 입장에서는 지난 위너스때보다 훨씬 희망적일 수 밖에.
우리 영화 수고 많았어.
"미안하다"가 아니라 "고맙다"고 말해 주어서 고마워.
영화를 자기일처럼 도와준 다른 아이들도 수고 많았어.
어느 때보다 서로 위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서 고마워.
이제 위너스에서 기세타면서 때맞춰 시작되는 개인리그도 뚫고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다.
파이팅!
덧) 우리팀이 서울에서 결승전을 치르기만 하면, 1시간도 안 걸리는 곳에서 경기를 하기만 하면,
왜 이렇게 도저히 갈 엄두도 못 내는 몸상태가 되는 건지. ㅠ_ㅠ
그렇게 사랑스러웠다는 우리팀 아이들을 직접 보지 못해서,
파이팅! 소리치는 목소리를 하나 더 못 보태서,
준우승하고 영화가 짓는 표정을 보지 못해서, 그게 너무 안타깝다.
위너스때 꼭 보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