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모르는 자 vs. 좌절을 모르는 자

  STX와 KTF가 맞붙었던 프로리그에서의 이영호 대 진영수 경기를 예고하던 문구이다. 엠비씨게임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우열을 비교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이너리티minority의 입장까지 반영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광고 문구에서도, 프로그램 기획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에, 엠비씨게임의 예고와 프로그램들은 언제나 신선한 재미를 주면서도 등장하는 선수들과 팬들 중에 아무도 상처받는 사람이 없는, 올바르고 감탄스러운 것들이 많았다. 이 엠비씨게임의 특별한 시각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쓰고 싶다.
  이 프로리그 예고에서도 그러한 시선이 반영되어서, 객관적인 성적의 우열을 떠나 이영호와 진영수라는 선수가 각각 지니고 있는 가장 특징적인 캐릭터를 정확하게 짚어내면서 두 선수를 모두 추켜세움으로써 두 선수가 붙는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데 성공했다.
 
  '두려움을 모르는 자'인 이영호와 '좌절을 모르는 자'인 진영수.

  정말이지 너무나 명료하고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영호에게는 어린 선수만이 가질 수 있는 패기가 있고, 처음부터 치고 올라가서 성공하면서 커리어를 시작했기 때문에 실패해보지 않은 선수로서 두려운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영수는 천재라고 평가받은 적도 없고, 본좌 후보로 거론된 적도 없었지만, 당대 최고라고 불리는 선수들과 몇 번이나 다전제 승부를 벌여서 지면서도, 이제 이 선수는 끝이다, 커리어는 끝났다, 이런 말들을 반복해서 들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오뚝이같은 선수이다.








  좌절을 모르는 자. 이승원 해설이 말했듯이, 진영수는 스스로가 한 번도 우승하거나 최강의 선수로 평가받은 적은 없을지언정, 언제나 당대 최강의 선수에게 호적수로서 맞섰다. 그 '최강'이라고 불리운 선수들이 전성기를 지나고, 또다른 '최강'의 선수가 나타나도 진영수는 언제나 그에 맞설 수 있고 그를 꺾을 것 같은 테란으로서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한 '호적수'의 삶을 살아온 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영수는 어느 누구를 만나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선수로 남아있기에 더욱 대단하고 매력적이다.

  어떤 사람에게나 삶은 고되고, 이겨내야만 하는 상황을 극복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선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나나 둘만 주어질 고난을 몇 겹으로 지고 가는 느낌이다. 그 많은 어려움을 모두 이겨내고 언제나 호리호리한 모습으로 정상을 바라보는 사람에게서 뿜어져나오는 강인함이란!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맥락에서 이야기하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아려운 것이다. 그런데 이 스무살의 어린 선수가, 수많은 유혹들을 이겨내고 만 6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더구나 2년 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프로로서의 성공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는, 변화의 속도가 엄청난 e-스포츠계에서 2년이 훨씬 지나서야 두각을 나타낸 선수로서, 그 기간 동안의 불안을 이기기는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진영수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는 선수이다.
  이유 없는 비난만큼 견디기 힘든 것이 있을까? 진영수는 다른 선수들도 인정한 것처럼 '실력에 비해 운이 없는 선수'였던 것이, 언제나 대진운, 정찰운, 빌드운, 모두가 나쁜 편이었을 때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심지어 가장 싫어하는 선수로부터 버그로 인한 석연찮은 패배까지 떠안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운영수'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근거없이 자존심을 다쳤어야 하는 때가 있었고, 온갖 커뮤니티에서 이유 없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잘하는 선수들부터 한 수 아래의 선수들까지, 막말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들은 모두 대면한 자리에서 진영수에게 예의없이 굴었으며, 공격을 서슴치 않았다. 어린 남자아이가 그런 근거없으나 악의 가득한 말들을 꼭꼭 씹어 넘기거나, 최소한 흘려버리기라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했을까. 진영수는 근거없는 비난과 모욕에도 언제나 도를 넘지 않으면서 당당했던 선수이다.
  어떤 공식 리그도 없었던 '한여름밤의 꿈' 때 단 한 번 최고의 찬사를 받았으나 '최강'이라고 불린 적이 없었던 진영수는, 언제나 만만한 선수였고, 막상막하의 명경기 끝에 최강자에게 지는 역할의 선수였다. 그는 어여쁜 외모와 매력적인 성격을 가진 최고의 조연으로서 오랜 기간을 보낸 것이다. 승부욕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이 선수가 그 좌절감을 견뎌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신을 이긴 선수들이 결승무대에서 우승하는 것을 볼 때마다 부러움과 동시에 찾아올 절망감을 이겨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을까. 진영수는 그 모든 시간 이후에도 다시 최강자를 향한 가능성있는 도전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 진정 좌절을 모르는 선수이다.

  두렵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쉽다. 하지만 한 번 부딪쳐 보아서 아픈 것을 알았는데도, 다시 부딪치면 아플 것이라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또다시 도전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대단하고, 멋지고, 경외로운 것이다. 좌절을 모르고 또다시 일어서서 꿈꾸고 도전하는 자. 진영수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진영수의 도전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저 선수의 어디에서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또다시 도전할 용기와 에너지가 솟아난 것일까. 그의 끊임없이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그래서 결국은 멋진 조연이 될 분위기가 아니라 진정 우승자의 길을 걸을 것 같은 오오라를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는 최근의 삶의 모습이, 나에게도 삶을 살아갈 용기와 에너지를 주고 있다.
  그의 예감처럼, 나의 예감도 좋다. 분명 그는 이번 시즌에 개인리그 결승과 프로리그 결승에서 우승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좌절하지 않고 삶을 또다시 살아갈 힘을 선물할 것이다.





Posted by +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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