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지나간 4월 23일의 뒤늦은 서바이버 리뷰.







시간이 안 맞아서 형태 경기를 보지 못했었다.
당연히 경기하는 형태의 얼굴도 보지 못했었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애 얼굴이 더 이상 빵빵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어 있었다.
알고 보니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빈소를 지키다 전날 밤에야 숙소로 돌아왔다고 했다.

이럴 때면 이 아이들이 나보다 어른이구나 하는 게 급작스럽게 와닿고, 너무나 가엾고 안쓰럽다.
어린 나이에 죽음을 경험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큰 일이다.
그게 장손으로서 맞은 조모상이었다면 정신도 없고 예를 갖추느라 힘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프로'이기 때문에 이틀 빈소를 지킨 할머니 발인도 못 보고
밤늦게 올라와서 또 연습을 해야 하는 잔인한 일정이라니.
잠 못 자고 우느라 눈이 저렇게 부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죽음이라는 게 늘 그렇듯 갑작스럽게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을 미루지도 못하고,
사실은 할머니 돌아가셨다고 슬퍼하고 울고 어리광부려도 될 나이이지만
책임감때문에 경기를 포기할 생각도 못 하고 결국 올라와서 경기를 치뤘을테다.
정말 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렇게 살면서 어떻게 나보다 빨리 자라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첫 경기를 이겨준 형태가 얼마나 고맙고 대견하던지.
그리고 승자전을 배틀까지 가는 긴 싸움 하느라 피곤했을 게 얼마나 안쓰럽던지.
정말정말 잘 했다. 아마 형태가 최선을 다한 것은 지켜보셨을 할머니께서 가장 잘 아실 거다.
이렇게 힘들게 보낸 사흘이 아쉽지 않도록 최종전에서 꼭 승리했으면 좋겠다.

형태의 기분이 어쩔 수 없는 우울에서 벗어나고 마음 추스리는 동안
파파곰이랑 흰둥이가 돌아오니까 형들 다시 생긴 김에 기대기도 하면서 다시 단단해지리라 믿는다.







정우, 정우, 우리 정우.
요즘은 이 아이의 표정이 웃을 때는 막 녹아내리는 미소에, 평소에는 별 거 아니라는 자신감 표정이라
그냥 얼굴만 봐도 긍정적인 기운이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게 느껴져서 너무나 기분이 좋다.

그리고 그런 느낌처럼 곧바로 2승으로 서바이버 뚫고 MSL에 올라가 주었다.

그런데, 뭐니뭐니 해도 우리 정우가 오늘 한 일의 백미는 인터뷰.

- 처음으로 MSL에 진출한 소감은
▲ 그냥 기쁘다. 처음이라 특별한 느낌은 없고 담담하다. 개인리그라 조금 더 부담이 적었고,
덕분에 긴장을 조금 해서 경기도 잘된 것 같다.

정우가 요즘 프로리그 경기할 때면 좀 딱딱하게 긴장한 표정이 보이더니,
대체 얼마나 긴장하면 긴장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 해서' 경기가 잘 되는 거니. ㅠ-ㅠ
정우 책도 많이 읽는다던데 마인트컨트롤 할 수 있는 잘 설득되는 책이라도 갖다주고 싶다.

- 주목을 받은 이후에 위너스 리그에서 주춤한 이유가 있다면
▲ 내가 약간 자만에 빠진 것 같다. 솔직히 연습도 예전에 비해 적게 하면서 실력이 저하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주춤하게 된 것 같다.

- 4월부터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는 것 같은데
▲ 이제 자신감도 예전으로 돌아왔고 성적이 좋을수록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우 잠깐 동안 주춤하더니 감독님 말씀이 틀린 게 없었구나.;;
연습 안 하면 당장 그 영향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몇 달 후에 나타난다던.
하지만 스스로 저렇게 깨닫고 인정하고 <- 이 부분이 중요하다 다시 열심히 연습하고 있으니,
지금 당장은 엄청난 실력발휘가 다 안 되더라도 차츰, 몇 달 후부터 진짜 실력이 나올 것이다.

-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이제 스타리그 예선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연습을 도와 준
진영화, 장윤철, 신동원, 한두열 선수에게도 고맙다.

자, 바로 이 부분이 정우네 조 서바이버 경기의 모든 것을 말해 주는 부분이다! _^_

상황 1. 첫 경기에서 토스전을 해야 했던 정우는 프로토스인 영화랑 윤철이랑 연습을 한다.
상황 2. 앞 경기에서 이제동이 '당연히' 웅진 테란 김동주를 이기고 승자전에 있을 것으로 예상한 정우는
저그인 동원이랑 두열이랑 MSL에서만 쓰이는 맵 '카르타고' 연습을 열심히 한다.
그런데?!
실제 상황. 승자전에 가니 테란인 김동주가 이제동을 물리치고
테란전 연습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카르타고에 자리잡고 있다.
이...이 상황은 뭔가...;;

사실 나도 당연히 이제동과 정우가 승자전에서 만날 거라고 생각했고,
이번에는 정우가 그 잘 하는 저글링 싸움으로 병세, 영화에 이어 이제동을 멋지게 이기리라 믿었다.
정우가 카르타고에서 저그전 연습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음은 물론이다.
어려운 상대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김동주가 승자전에 올라와서 우리 정우는 이제동과 붙을 기회조차 없게 되어버렸고,
웅진 테란들 이날의 컨셉인듯 날빌로 일관하던 것은 정우에게까지 이어졌는데
나름대로 유연한 대처로 잘 막고 이겨서 첫 MSL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그리고는 인터뷰에서 연습해줘서 고마운 선수들 이름을 불렀는데, 테란이 없다. _^_

너무 재미있어서 한참 웃었다.
물론 이건 때에 따라선 너무 위험한 선택이라 정우를 야단쳐야 할 수도 있겠지만, 물론 야단치고 싶지 않지만
이런 조편성일 때는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서 선택적인 연습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정우 입장에서도 중요한 무대에서 졌던 이제동이란 상대를 만나서 이기기를 열망했을 테고 말이다.
이런저런 현실적인 조건과 선수의 바람이 어우러져 테란전을 포기했는데 결국은 테란을 이겼고,
인터뷰에서 너무너무 순진하게, 악의없이, 야~ +0+ 우리팀 영화 윤철이 두열이 동원이 고마워요~
이렇게 말해서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고 연습했는지를 드러내 버리다니, 너무 귀엽다. _^_

경기는 조금씩 불안불안한 부분이 있었지만, 사실 너무 오래 지나서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토스전 4아칸 강공 들어올 때 컨트롤 잘 해서 잘 막고, 드론도 잘 빼고, 결국 잘 이겼고.
테란전은 처음엔 상대의 날빌에 좀 휘둘리면서 눈치 못 채고 흔들리나 했더니,
또 처음 히드라 러쉬로 앞마당 피해를 많이 못 줘서 망설이나 했더니,
러커와 순식간에 러쉬 들어가서 앞마당 터렛 부수고 맞고 있는 히드라 러커변태 시키는 센스까지!
드랍쉽에 멀티 깨지면서 또 흔들리나 미안하게도 잠깐 의심했지만,
결국 완전히 손 풀려서 모든 곳에 신경 곤두세운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승!

우리팀의 미래는 밝았다. _^_



형태 정말 고생 많았고, 최종전만 준비하면 되고 시간도 많으니까 꼭 올라가자!
정우 수고 많았고, 너무너무 잘해서 너무너무 이쁘다. _^_

점점 MSL에 기대가 커지는 CJ빠 1인.

Posted by +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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